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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못 내? 당장 나가” 뉴욕선 패싸움까지

美 ‘코로나 월세대란’


지난달 말 뉴욕시 서민 밀집 지구인 브롱크스의 아파트 앞에서 대낮에 패싸움이 벌어졌다. 한 집주인이 몇 달간 월세를 못 낸 세입자의 집에 인부들을 끌고 들이닥쳐 가구와 집기를 길거리로 끌어낸 것이다. 세입자의 하소연을 들은 시민단체가 몰려와 격렬히 항의했다. 이를 보도한 지역 매체는 “1930년대 대공황 때나 볼 수 있던 살풍경”이라고 했다.

 미국의 월세(月貰) 세입자 수천만 명이 코로나 여파로 실직하면서 몇 달째 주택 임차료를 못 내 강제 퇴거할 위기에 놓였다. 미 도시개발 연구소인 어번 인스티튜트는 최근 “미국에서 세입자 1230만 가구, 2800만여 명이 8~9월 중 강제 퇴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컬럼비아대는 이로 인해 올해 미 노숙자가 45% 증가할 것으로 봤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미 전역에서 1000만여 명이 월세를 못 내 거리에 나앉으며 중산층이 붕괴했다는 말이 나왔는데, 더 심각한 사태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 시각) 기자들에게 “곧 많은 세입자가 집에서 쫓겨날 것”이라며 “이를 멈추기 위해 행정명령 발동 등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하원 의회에선 민주당 주도로 1년간 퇴거 금지 조치와 함께 1000억달러(약 120조원) 규모의 임차인 구제 예산을 투입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무엇보다 미국의 주택 임대차가 월세뿐이기 때문이다. 미 국민 3분의 1인 1억명(4300만 가구)이 월세로 살고, 상당수가 소득의 절반 정도를 월세로 낸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느라 저축을 거의 못 하고, 내 집 마련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경제가 좋을 땐 이 시스템이 별로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코로나 경제 봉쇄로 실업률이 6월 기준 11%에 이르면서 이 ‘약한 고리’부터 때렸다. 서민·중산층 가계 지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월세를 못 내는 사태가 속출한 것이다.

각 주(州) 정부와 법원은 코로나라는 특수성을 감안해 지난 3~4월부터 월세를 못 낸 세입자들의 강제 퇴거를 1~3개월씩 유예했는데, 유예 조치가 대부분 7월 말 종료됐다. 또 연방 정부가 지급하는 주당 600달러(약 72만원)의 재난 지원금도 거의 끝나간다. 벼르던 임대인들은 세입자들의 강제 퇴거를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이미 텍사스와 플로리다, 위스콘신 등에선 강제 퇴거가 시작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주급 800달러(약 96만원)를 받던 40대 직장인이 코로나로 실직한 뒤 실업 수당에다 친지에게 빌린 돈으로 월세를 충당했지만, 최근 셋집에서 쫓겨나 무료 급식소 근처에 텐트를 치고 사는 사연을 소개했다. 위스콘신 밀워키에선 6월에 61건이던 강제 퇴거 소송이 지난달 1447건으로 폭증했다.

임차인 입장도 딱하지만, 미국에선 임대인들도 월세를 받지 못하면 당장의 생활과 노후 설계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같은 피해자로 보는 시각이 많다. 임대인 중 모기지(mortgage·주택담보대출)를 끼고 산 집을 세를 놓아 생계 수단으로 삼는 은퇴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높은 부동산 보유세도 이런 상황에선 임대인들의 운신 폭을 좁힌다. 뉴욕의 경우 10억원짜리 집을 갖고 있으면 보유세로 연 1800만원을 내야 한다. 통상 집주인은 보유세와 관리비, 모기지 상환금 등을 빼고 월세 수입 중 3분의 1 정도만 손에 쥘 수 있다고 한다.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버는 길은 막아놨지만 임대인은 물론 임차인까지 연쇄 타격을 피할 수 없는 구조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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