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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태광 목사 – ‘한국판 쉰들러’ 군종목사 러셀 블레이즈델

‘한국판 쉰들러’ 군종목사 러셀 블레이즈델

강태광 목사
월드쉐어USA 대표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이 베푼 사랑의 흔적을 살피면 큰 감동이 있다. 포항에 한 미국 해병대 군종목사가 직접 세우거나 결정적인 도움을 준 교회, 병원, 보육원이 있다. 가평에는 미 보병 40사단이 세운 고등학교가 있다. 수원에는 터키군이 운영했던 ‘앙카라 고아원’ 기념비가 있다. 

한반도 곳곳에 전쟁터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사랑의 꽃이 있다. 수많은 사연 가운데 ‘유모차 공수작전(The Kiddy Car Airlift)’이라 불리는 전쟁고아 수송작전은 세계 전쟁사의 유례를 찾기 힘든 특별한 사건이다. 

1.4후퇴를 앞둔 긴박한 상황에서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위해 미 해병대 차량과 공군 수송기가 동원되었다. 유모차 공수작전은 평소 전쟁고아들을 돌보던 러셀 블레이즈델(Russel Blaisdell) 군종(중령)목사와 군종행정관이었던 멀 스트랭 하사 그리고 전쟁고아들에 대해 특별한 마음을 가진 조종사 딘 헤스 중령의 기지와 헌신으로 이뤄진 작전이었다. 

유모차 공수작전을 이끈 블레이즈델 목사는 미네소타주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 후 매코믹 신학교를 마치고 목사가 된다. 잠시 목회 후 1940년에 입대해 육군 항공대 군종목사로 근무한다. 그는 2차 대전 종료 직전에 미 공군으로 편입돼 일본에서 근무했다. 한국전 발발 후 한국에 전개되는 제5공군사령부 군종목사로 보직을 받아 한국전에 참전했다.  

인천 상륙작전 직후 서울을 수복하면서 서울을 방문한 블레이즈델 목사와 스트랭 하사는 길거리에 버려진 고아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서울 시내를 돌며 전쟁고아들을 모아서 돌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아들을 고아원(보육원)에 수용했으나 고아들이 늘어나 학교에 전쟁고아 수용시설을 마련한다. 

그런데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소위 1.4후퇴를 한다. 당시 블레이즈델 목사에게는 고아들의 안전 대피가 최대 과제였다. 그는 고아를 안전하게 후방으로 수송할 방법을 백방으로 수소문한다. 결국 사령부로부터 ‘C-54 수송기로 대피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하지만 1000명의 고아들을 15시간 안에 김포공항에 준비시켜야 했다. 방법이 없었다.

눈에 불을 켜고 방법을 찾던 블레이즈델 목사는 미 해병대 트럭을 발견한다. 그는 상부의 명령이라고 거짓으로 지시하면서 고아들을 김포공항으로 수송하게 하고 성공적으로 제주도로 대피시킨다. 훗날 이것 때문에 그는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강제 전역당한다. 블레이즈델 목사의 이런 선행은 2000년 12월에 미 공군기관지 ‘에어맨(Airman)’에 소개되어 세상에 알려졌고 한국 정부는 2001년 블레이즈델 목사를 초청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블레이즈델 군종목사(중령)와 조종사 딘 헤스 중령은 ‘유모차 공수작전’을 완수해 1000여 명의 전쟁고아를 구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한국 전쟁고아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러나 블레이즈델 목사는 이 사건으로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조기 전역을 당해 한국판 쉰들러(Schindler)라고도 불린다. 

70년 전 한국은 소련제 탱크와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풍전등화였다. 그때 목숨을 걸고 조국을 위해 싸운 백선엽 장군 같은 전쟁영웅들과 미국을 포함한 우방국 군인들의 피와 헌신 덕분에 오늘의 한국이 있다. 잊지 않아야 한다. 전역 후에도 한국 고아사랑들을 변함없이 사랑한 한국판 쉰들러 블레이즈델 목사의 추모 동상이 광주광역시 충현보육원에 세워져 그의 사랑과 희생이 기억되고 있어서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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