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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태광 목사 – 슈투트가르트 회개선언과 차별 금지법

강태광 목사
월드쉐어USA 대표

슈투트가르트 회개선언과 차별 금지법   

마틴 니묄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 잠수정 함장으로 참전했다. 당시 마틴 니묄러는 많은 전과를 세운 전쟁영웅이었다. 하지만 독일이 1차 대전에서 패배하자 니묄러는 큰 충격을 받고 패전을 독일의 모욕이라 생각했다. 니묄러는 1차 대전 종전 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루터교 목사가 되었다.


히틀러가 민족 사회주의를 주창하고 나치운동을 할 때 니묄러 목사는 히틀러가 독일의 영광을 되찾아 줄줄 믿고 지지했다. 하지만 곧 나치가 주창한 ‘게르만 그리스도교 운동’이 히틀러를 그리스도화 하는 것을 알고 돌아선다. 1933년 9월 나치에 의해 유대인 목사들을 교회에서 추방될 때 니묄러는 이런 나치의 행태를 비성경적으로 규정하고 목사긴급동맹을 결성해 반대했다. 목사긴급동맹은 나치의 종교정책을 반대하는 운동이었다.


이 목사긴급동맹은 ‘고백교회’ 결성으로 발전했고 용기 있는 7천명의 독일 목회자들이 동참했다. 고백교회는 ‘반 신앙적 국가정책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기치로 뭉쳐서 나치에 저항했다. 나치의 큰 박해를 받은 고백교회 목사들은 수감되고, 추방되고, 사형을 당한다. 니묄러도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1945년 연합군에 의해 구출될 때까지 8년간 수감생활을 했다.


긴 옥고 후 석방된 니묄러목사는 ‘전쟁책임고백서’라는 책을 쓴다. 이 책에서 니묄러는 “전쟁의 책임은 히틀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목사인 나에게도 있다!”라고 고백했다. 이 고백은 특별한 꿈 때문에 나왔다. 그는 동일한 꿈을 수차례 꾸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꿈에서 그는 천국 심판대에 섰다. 눈부신 광채로 아무 것도 볼 수 없고 뒤를 볼 수도 없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있었다. 광채 속에서 음성이 들렸다. “변명할 말이 있는가?” 그러자 음성이 들렸다. “네, 누구도 저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니묄러는 그 음성의 주인이 히틀러인 것을 알고 깜짝 놀라 꿈에서 깼는데 온 몸에 땀에 흥건했다.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면서, 니묄러는 자신의 죄를 깨닫는다. 그는 나치 만행을 히틀러의 죄라고 생각하고 히틀러를 비판했는데 이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다. 그는 히틀러가 바른 길을 가도록 자신과 독일 교회가 바른 복음을 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히틀러가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니묄러가 깨달은 것은 ‘당시 목회자들은 히틀러의 하수인 혹은 원수로 나뉘어 자신들의 논리에 빠져 순수한 복음을 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어떨까? 백악관과 청와대에 순수하고 바른 복음이 전해질까?


1945년 10월, 니묄러 목사를 중심으로 독일 목회자들은 “슈투트가르트 회개선언”을 발표했다. 그들은 ‘히틀러처럼 독일교회도 범죄했다!’며 회개했다. 슈투트가르트 회개선언은 나치 체제하에서 목회자와 교회들이 믿음과 용기, 기도의 부족 때문에 복음으로 나치를 막지 못했음을 회개한다.
현재 포괄적 차별금지법같은 비 성경적인 법이 미국은 이미 시행중이고 한국은 입법 추진중이다. 이 법이 신앙에 심각한 방해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사태를 직면한 것이 우리 신앙인들의 믿음과 용기와 기도의 부족임을 인정하며 회개한다. 그래서 슈투트가르트 선언을 했던 니묄러와 독일 목회자들의 마음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반대한다! 차별 금지법은 나쁘고 위험한 법이다. 이런 법이 통과되어 시행되면 발의하고 통과시킨 자들의 책임도 크지만 한국교회와 해외 한인교회 적다 할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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