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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학춘 목사]크리스천칼럼_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오늘

   “아버님 항렬이 무어에요? 돌림자가 무어지요?”

림학춘 목사
라구나힐스교회 담임

얼마 전 주일 저녁에 양가 부모들이 참석한 가운데 아들 집에서 성별 공개 파티가 있었다. 30년 전에 베이비 샤워란 말을 들었을 때의 생소함과는 다른 긴장감이 있었다. 줌(Zoom)으로 초대된 친구들이 태아에 관한 열 가지 퀴즈와 산모의 대답을 들으면서 파랑과 핑크로 답을 표시하고 있었다. 두 가지 색상이 함께 올라와 있었다. 마침내 퀴즈가 끝나고 아들이 속이 보이지 않는 큰 검은 색 풍선을 손에 들었다. 이윽고 풍선을 터뜨리자 파란 색종이가 방안에서 꽃잎처럼 날고 있었다. 양가의 첫 손자다.

   영어 이름을 발표하고 나서 며느리가 물은 질문이었다. 전혀 예상 밖의 질문이었다. 순간 머리가 멍했다. 야곱의 열두 아들 이름을 알고 있어도 나는 정작 항렬도 가문의 뿌리에 대한 역사도 모르고 있었다. 생각조차 못한 질문이었다.

   일사후퇴 때 남매만 넘어오신 아버님은 가족을 일구시느라 한 번도 가족의 휴가라는 것을 갖지 못했다. 나 자신도 학창시절을 보내고 군대에 가고, 최전방에서 통신병으로 33개월을 복무하고 전역한 후로는 일선 목회에 나서서 분주한 생활을 했다. 가문에 대한 그 어떤 것도 여쭤볼 시간조차 없었다. 그리고 유학을 떠나 미국으로 온지 31년이 지났다. 지난 세월 동안 그저 벌처럼 열심히만 살았다.

   그러니 정작 가족의 뿌리를 물어보는 며느리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를 당황케 한 2세 며느리의 이 질문이 고마웠다. 즉시 대답을 할 수 없어서 당황하긴 했지만 며느리가 나보다 더 한국적인 것이 고마웠던 것이다.

   역사는 누군가 기억하고 전해주어야 기록된다. 귀가해 울진 림씨의 항렬을 찾다 가문의 역사를 일견했다. 조선개국 초기 고려복벽운동에 나섰다가 조선에 의해 핍박을 받아 멸문지족(滅門之族)의 참화로 흩어져 살다 이조 숙종 때 복권된 충절의 가문이 울진 림씨(蔚珍林氏)라고 한다. 마치 카타콤의 옛신도들의 300년 역사를 읽는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한국인의 10대 성에 들어가면서도 울진 림씨는 2% 미만인 1만 5000명의 소수가문이라고 한다. 항렬은 아직 찾지 못했다.

   친일파 뿌리 논란이 여전한 현재 한국 상황을 보면서 고려조의 충절을 지키며 300년 은신하다 극적인 생존을 한 후손이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한마디 이렇게 한다. 일본인보다 더 독한 조선의 역사를 아는가? 조선조 때 중국에 당한 것은 왜 침묵하는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남북이 갈라졌는데, 일제하 보다 더 잔혹한 상처를 준 남북전쟁은 현재 진행형인데 그보다 더 옛날을 뒤적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비뚤어져 있는 게 다 그 때, 그들의 탓인가?

   나의 선친은 일제 36년보다 더 사악한 분단의 역사 안에서 시간만 갑절이 아니라 고통이 곱의 곱절도 넘는다. 이것이 우리 집안만의 이야기일까? 지금 김씨 조선을 추종하는 무리가 집권하고 있다는 게 웬말인가? 어제는 오늘의 역사이고 오늘은 내일의 역사이다. 2세, 3세들뿐만 아니라 300년 뒤에도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오늘 남기라. 어제를 위해 싸우다가 오늘을 놓치면 내일에 부끄러운 부스러기만 전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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