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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남자 엉덩이 만진건 괜찮다? 나라 망신시킨 외교부

뉴질랜드선 ‘동성간 성추행’ 민감한데… 한국식으로 대처하다 외교갈등


외신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 외교관 A씨는 2017년 말 주뉴질랜드 대사관에 근무할 당시 현지 채용한 백인 남성을 자신의 사무실과 엘리베이터 등에서 3차례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A씨가 2017년 11월쯤 대사관 사무실 책상 위의 컴퓨터를 고치라며 부르더니 뒤편에서 자기 왼쪽 엉덩이를 꽉 쥐었다(squeeze)고 주장한다. 얼마 뒤 A씨는 대사관이 있는 빌딩 엘리베이터에서 피해자의 사타구니 부위와 손, 허리 벨트 부분을 움켜쥐었다(grab)고 피해자는 경찰에 진술했다. 피해자는 이 같은 사실을 대사관에 알리고 문제 제기를 했는데도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해 계속 상관인 A씨와 같은 건물에서 근무했고 결국 그해 12월 다시 한번 성추행을 당했다고 한다. 뉴질랜드 경찰은 그해 12월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A씨는 현지 경찰의 조사를 한 번도 받지 않은 채 이듬해 초 귀임했다.

 이후 A씨는 외교부 자체 조사를 거쳐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외교부는 조사 과정에서 A씨가 피해자의 엉덩이와 배 등 신체 일부를 툭툭 치는(tapping) 정도로 접촉했다면서도 “동성(同性) 간 접촉이었기 때문에 성적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한 것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는 그해 A씨를 아시아 주요국의 총영사로 임명했다.

외교부가 지난 3년간 비공개했던 이 외교관의 성 비위 사건은 지난 4월 뉴질랜드 언론이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뉴질랜드 법원이 지난 2월 A씨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해 집행 협조 요청을 했지만, 한국 외교부가 ‘외교관의 특권 및 면제’ 등을 이유로 들어 거부했다는 내용의 보도였다.

하지만 외교부는 이번 사건과 관련한 각종 문제에 대한 국내외 언론 지적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 외신은 외교부의 대응 태도와 관련, “한국 외교부에 문화적 문제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단지 몇몇 ‘나쁜 계란(bad eggs·못된 사람들)’의 사례일 뿐일까”라고 지적도 했다. 현지에선 이번 사건으로 한국에 대한 부정 여론이 부글부글 끓었던 것이다.

급기야 뉴질랜드 주요 방송 매체인 뉴스허브는 지난 25일 7분 20초짜리 심층 보도를 통해 뉴질랜드가 6·25전쟁에 참전할 정도로 한국과 우방인데도 한국 정부는 뉴질랜드 국민의 성범죄 피해 수사에 비협조적이라고 강력 비판했다. A씨가 경찰 수사에는 일절 응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외교부 주요 보직을 맡고 정상 근무하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다 사흘 뒤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28일 한·뉴질랜드 정상 통화에서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이번 성 비위 사건을 언급하고, 이에 문 대통령이 “사실 관계를 확인해 처리하겠다”고 답한 것이다. 진작에 외교부가 뉴질랜드 측에 해야 할 말을 대통령이 대신한 꼴이었다. 외교부가 거듭된 뉴질랜드 측의 문제 제기에도 이번 의혹을 ‘개인 문제’로 치부해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다 ‘외교 망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이 이렇게 커진 데는 외교부가 동성 간 성추행도 이성 간 문제와 다르지 않게 심각하게 보고 엄벌하는 뉴질랜드의 사회 문화를 간과한 탓도 있다는 지적이다. 현 주한(駐韓) 뉴질랜드 대사는 지난해 10월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행사에 동성 남편을 데리고 가 문 대통령에게 인사시키기도 했다. 뉴질랜드는 2005년 동성애 커플에게도 법적 권리를 인정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2013년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A씨가 동성 간 접촉을 강조하며 성추행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외교부도 이런 점을 조사 과정에서 참작했지만, 그가 피해자의 거부 이후에도 거듭 예민한 신체 부위를 만졌다는 점은 뉴질랜드에선 성추행으로 충분히 여겨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법도 성범죄는 성별과 무관한 ‘사람’ 간의 행위로 본다. 동성 간 성범죄도 성립되는 것이다.
노석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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