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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서 애국심 호소한 IT 거물들 “우린 美기업, 삼성에 쫓겨”

IT 빅4 ‘反독점 청문회’ 동시 참석
아마존·애플·페이스북·구글 등 세계 최대 IT(정보기술) 기업 수장들이 29일(현지 시각) 미국 하원에 처음으로 한꺼번에 불려 나왔다. 이들이 시장을 장악해 중소기업을 말살시키고 소비자에게 피해를 줬다는 반(反)독점법 위반 조사 청문회에서다. 청문회는 코로나 때문에 화상으로 진행됐다. 4대 기업 시가총액만 한국 유가증권시장의 4배에 달하는 5조달러(약 6000조원)여서 ‘세기의 청문회’ ‘블록버스터’로 불리며 이목이 집중됐다.

청문회를 주도한 민주당은 1년 넘게 이 기업들의 불공정 관행에 대한 자료 130만건을 수집해와 이날 6시간 동안 공격했다. 하원 법사위 반독점 소위의 데이비드 시실리니 위원장은 모두 발언에서 “미국의 국부(國父)들이 왕 앞에 절하지 않았듯, 우리도 온라인 황제들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했다.

기업들은 ‘애국’을 방패로 삼았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애플이야말로 가장 미국적인 기업”이라며 “전통 제조업은 후발 주자에 진입 장벽이 높았지만 기술 시장은 다르다. 삼성과 LG, 화웨이 등이 새로운 방식으로 경쟁에 접근해오고 있다”고 했다. 세계 30억명이 가입한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는 “10년 전만 해도 소셜네트워크는 미국 기업이 다 갖고 있었지만 이젠 절반이 중국 기업”이라면서 “미국 기술 기업의 성공이 곧 미국의 성공 스토리”라고 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도 “우린 미국의 혁신과 창조, 자유 경쟁의 정신을 지키며 미국에서 엄청난 일자리를 창출해왔다”면서 “경쟁자가 계속 나와 소비자 선택권은 넓어지고 있다”고 독점 의혹을 부인했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는 아마존이 현재 미국인 100만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지난 10년간 미국의 어떤 회사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했다.

이 거대 IT 기업들의 독점과 탈세 논란은 4~5년 전부터 유럽에서 제기됐고, 미 진보 진영이 부(富)의 집중을 비난하며 거대 IT 기업 분할을 주장해 정치 이슈화됐다. 구글은 온라인 광고·검색·소프트웨어 독점과 일감 몰아주기, 페이스북은 소셜네트워크 광고 독점, 애플은 휴대폰 앱스토어 공급 독점, 아마존은 온라인 상거래 중개 플랫폼이면서 직접 판매를 겸업해 시장 질서를 교란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들이 이날 ‘경쟁국에 포위된 미국 기업’을 내세워 엄살과 읍소를 동원한 것은 영리한 전략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은 IT·바이오 등 핵심 분야 외엔 성장 동력을 많이 잃었고, 수퍼 파워를 넘보는 중국과 무역·외교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런 때 자국의 주력 기업에 철퇴를 가하자는 여론이 확산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그러나 ‘애국 기업’을 자임한 이 4대 기업들은 중국의 기술·지식 탈취 논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애플과 구글의 CEO는 “(중국의 기술 절도에 대해) 개인적인 지식이 없다”고 했다. 아마존 CEO는 “아마존에서 팔리는 중국의 짝퉁 제품에 관한 것 외엔 직접적으로 아는 게 없다”고 했다. 중국 시장을 의식한 것이다. 미국의 중국 IT 기업 틱톡 때리기로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 페이스북 CEO만 “중국이 미국 기술을 훔쳤다는 건 충분히 문서화됐다”고 답했다.

하원 법사위 반독점 소위의 시실리니 위원장이 청문회 마무리 발언에서 “이 기업들은 모두 독점기업임이 드러났다”며 “일부 기업은 분할돼야 한다”고 정리했지만, 이 기업들의 주가는 이날 각각 1% 이상 올랐다. 100여년 전 반독점법을 확립한 미국에선 과거엔 반독점 조사에 돌입한다는 사실 자체가 기업에 재앙이었다. 에너지·통신·금융 대기업이 강제 분할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청문회에선 결정타는 없었고, 오히려 이들의 강고한 위상을 재확인시켜줬다는 말이 나왔다.

뉴욕/정시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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